창작 후기 -3- 에스컬레이팅 액션, 죽느냐 사느냐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나라 왕이 자신의 식객이던 한 화가에게 "무엇을 그리는 게 가장 어렵냐"고 물었어요. 귀신, 용을
생각하던 왕은 의외로 "개나 말이 어렵습니다."란 대답을 들었어요. 이유를 묻자 귀신이나 괴물은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이나 사물은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액션 장면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액션 장면에 대한 고민은 무척 많은데, 방법만 알면 오히려 평범한 장면보다 더 쉬운 게 액션 장면이
에요. 평범한 장면은 조금만 잘못하면 독자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비판의 눈을 번뜩일
수밖에 없어요. 모두가 전문가인 까닭이죠.
따라서 오늘의 창작 후기도 다른 꼭지에 비해 꽤 간소한 편이네요.



 

1. 액션의 정의
우선 액션 장면이 무엇인지부터 정의를 내려야겠죠?
인간은 상상력이 뛰어난데다 감정이입도 가능하기에 놀랍도록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면
쾌감을 느껴요.
이를 대리만족의 욕구라고 분석하기도 하고, 기예(art)를 접한 미학적 본능이라고 부를 때도 있어요.
넓게는 올림픽에서 프로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나 발레 공연 같은 것들이 있고, 좁게는 제가 말할 창
작물 속의 전투 관련 액션 장면 등이 있겠죠.
개인적으로 전 하이킥과 업어치기 장면이 그렇게 통쾌할 수 없더라고요.
습작을 서너 번 해 보면 아시겠지만 특히 남자 분들은 어느 순간 전투 장면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됩니다. 쓰는 사람도 재밌고, 대부분 보는 사람도 반기고, 몰입해서 쓰기도 편하거든요. 여기에
서 더 발전된 증상은 스토리가 막히면 전투를 한다든가, 난데없이 새로운 등장 인물이 나타나는 등의
문제점이 있겠죠. ^^;;;;
뭐, 나쁘지 않습니다. 놀리거나 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제 경험이기도 하고요. 안 쓰는 게 최고로
나쁜 거죠.
대중 문화를 꾸짖는 높으신 분들은 저급한 본능의 발현이라고 보는 부분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액
션 장면을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게임에서만 보면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행복해요.
인류 역사상 징집 연령의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다른 남자나 여자를 죽이지 않고 그것을 순수하게 오
락으로 즐기기는 힘들었으니까요. (머릿속으로 수많은 전쟁터들이 스쳐 지나는군요.)




2. 지식을 쌓자!
무엇이나 다 그렇겠습니다만 액션 장면을 잘 쓰려면 일단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해요.
지식이 여러분을 자유롭게 만들어줍니다.
판타지 같은 경우에는 무기나 갑옷의 지식이겠죠. 무협이라면 내공이나 외공, 초식, 당대의 무기 등을
모르면 안 되지요. 집단전으로 나가면 사학 쪽의 고대 전이나 중세 전투를 알아야겠죠? 밀리터리 소설
인 경우 방대한 지식을 쌓아야겠고요.
스릴러, 호러, 미스터리, SF 등의 장르에서는 총기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왕왕 있네요.



제 경우에는 일단 해부학부터 시작했어요. 인체가 어떻게 피해를 입는지, 입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
는지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PC 통신 동호회 시절 해부학 동호회 회원으로 등록하고, 의사 아저씨아줌마들에게 뻔질나게 궁금증을
물어봤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유명 고어 물이나 호러 물을 챙겨봤던 시절도 있었고,
그동안 우리나라 군사 잡지 <플래툰>이나 외국 군사 잡지들을 꾸준히 모았어요. 격투기 등의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고요. 직접 체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좀 열심히 했어요.
이번 책 쓰면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았던 책들은 역시 밀리터리 분류에 십여 권 있는 참전용사 참전
수기 등의 책들이었어요. 전장에 갈 일이 없으니 (앞으로도 없기를;) 직접 체험은 불가능하고, 간접
체험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지요. 이를 위해 <팔루자 리포트>, <전투 감각> 등 주로 개개인의 전투 경
험을 나열하는 책을 정독했네요. 특히 전투 감각은 꼭 한 번 보세요. 베트남 전에 참전한 초급 장교
의 경험담인데 총격전이 제대로 회고되었어요.
FPS 게임도 좋은 교재입니다. 본인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맞는 게임들을 골라서 체험해 보세요.
요즘은 인터넷 환경이 좋아서 유투브 같은 데에서 martial arts 같은 단어만 치면 꽤 흥미로운 동영
상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3. 항상 상승하는 희귀한 액션
액션 장면 창작시 제가 지킨 원칙이 세 가지 있어요.
첫째, 같은 패턴의 액션 장면이 없을 것. 이건 희소성의 가치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죠.
둘째,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곡선을 그리도록 액션 장면들을 배치할 것. 아마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셋째, 현실적으로 인식되기 위해 액션 장면의 출현 빈도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어요.



같은 패턴이라 함은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비슷비슷한 캐릭터들끼리 대동소이한 무기나 방식으로 싸우
는 방식을 가리켜요. 이러면 쓰는 사람은 편할지 몰라도, 보는 사람은 재미없죠. 연재를 하든 출판을
했든 이 세상에 소설은 과할 정도로 너무 많아요. 튈려면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전투 장면을 만들면서 배경으로 평지를 상정하고 그 위에서 인물들을 싸우게 했다면 반성해야 해요.
변화를 위해선 하다못해 빙판이나 구멍이라도 설정해야죠.
국내외 장르 소설 작가 중 전투 장면 잘 쓴다는 평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답이 더욱 선명
하게 다가와요. 성룡이 영화마다 특이한 액션이나 스턴트 장면을 선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러합니다.
튈려고. 손님들의 뇌리에 남아서 다음에도 보게 하려고.



한편 처음부터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장면을 배치하지 마세요. 미리 고품질의 액션을 보여주면 독자
는 본능적으로 다음에 더한 것을 기대했다가 실망하게 마련이에요. 항상 상승하는 패턴으로 처음에는
약소한 것을. 그러다 결국 클라이맥스를 만들 수 있도록 알맞게 배치하시는 게 좋아요. ^^

요리로 치면 전채는 간소하고 입맛을 돋굴 수 있는 것들을 내놓다가, 메인 요리가 가장 뻑적지근한
원리와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전투 장면이 자주 나오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생겨요. 현실에서 전투는 정말 최
후의 수단이에요. 아니, 욕설이나 멱살잡이마저 벌금을 내는 등 현실에서는 아주 사소한 시비나 싸움
도 벌을 받아요. 
소설 속의 인물들도 피와 살을 가진 존재에요. 전투 장면이 없으면 안 되는 특정 장르를 제외하고는,
모든 창작자들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전투, 꼭 해야만 하는 전투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투를 벌이기 전의 공포감과 적을 해치운 다음의 쾌감 등의 감정 표현도 미리 생각해 두어야겠지요.
액션 장면도 사람의 심리를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어요.



위의 사항을 잘 지켜서 독자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재미를 주었느냐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경우는
첫 액션은 필리핀의 전통 단검 격투술 에스크리마로 두 사람이 좁은 화장실에서 싸우는 장면이에요.
다음은 뚱보와 말라깽이가 필사적으로 껴안고 죽을힘을 다하는 육박전이죠. 그러다 특수한 장비를 가득
입은 부대원들이 가스 폭발에 휘말려 사망하는 폭발 장면이 나와요.
이후에도 겹치는 장면이 없도록 안배했죠. 소규모 총기 전투 장면에 이어서 뒤로 가면 갈수록 전투의
스케일,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의 숫자와 동원되는 장비가 커지게 만들었어요.
잊지 마세요.
전투는 특이한 배경(상황), 특이한 장비, 특이한 개인을 보여줘야 해요. 같은 책 안에서 겹치는 액션
장면이 있어서는 안 돼요. 진부한 감이 들어서는 곤란해요.



4. 끝없는 탐구의 길
베스트셀러 작가 딘 쿤츠가 액션은 환영받는 독자 서비스라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죠. 진짜에요. 장르에
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정교할 필요,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에요.
앞으로 소설은 영화화되는 일이 잦아질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영상물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길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창작자들은 준비해야겠죠.











다음은 소설 내 특정 장면이 어떻게 고안되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할게요.
G. K. O !


by 트린드리야 | 2009/08/12 10:23 | 위대한 자들의 탄생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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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역군 at 2009/08/12 11:57
DVD 영화 다보고 서플먼트 보는듯한 재미가 있어요. ^^
Commented by 유웨카 at 2009/08/16 17:43
ㅇㅂㅇ;;액션이 사실 묘사하기 제일 힘들어요-라고 저는 생각해요^^ㅋㅋㅋ사실 저번에 단편소설 그룹별로 쓰기시작했을 때 액션부분을 묘사하기 위해서 3D MAX와 MAYA를 참고한 적이 있었어요(그것도 한낮에 남정네들이 꽉찬 공대 컴터실에서 여자 둘이서!!!!-ㅂ-;;) 아직도 액션 장면을 써보라 하면 자신이 없네요>ㅂ<;;;ㅋㅋ
Commented by 다크엘 at 2009/08/28 15:59
오오...역시 잘쓰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배우는게 많아서 좋아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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