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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퇴역 장교 앨런 분 중위> 여왕폐하의 탐정

 







 정복을 갖춰 입은 걸인은 정모 밖으로 삐쳐 나온 긴 흰 머리를 흩날리며 낡은 벽돌집 사이로 들어섰다. 그는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왼쪽의 꿈같은 황금 동전 주머니, 오른쪽에는 악몽처럼 따라다니는 참전 약장 들을 계속해서 어루만졌다. 버밍엄 연대 제3대대 제1중대 보병척후소대 소대장이자 제대 당시 중위로 의가사제대한 소위 알렌 분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따라붙는 듯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이 근처에 횡행하는 건달들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드물게는 자신에게 아무 이유 없이 거금을 뿌린 미친놈일 수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내 자신의 과거겠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죽음만이 구원인.

 앨런은 히죽거렸다가 곧 얼굴을 구겼다. 평소에는 몽롱한 정신이 쓸데없이 그럴싸한 생각을 늘어놓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슬슬 술이 깨서 알코올에 젖었던 뇌가 제정신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한 잔, 두 잔 이어 한 병을 비워서 뇌를 가라앉혀야 했다. 그래야 잠수함이 구축함이 내뿜는 폭뢰를 피해 잠수하듯, 이 험악하고 슬픈 세상과 마주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앨런은 중산층 거주지와 빈민가 거주지 접경지역에 있는 숙소, “영웅들의 안식처에 도착했다. 육군성이 집이 없거나, 집에서 받아주지 않는 퇴역군인 들을 위해 만든 일종의 쉼터였다.

 3층짜리 낡은 벽돌 건물은 붙은 이름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앞에서 정복이나 트렌치코트를 입고 서성대는 남자들은 영웅이, 곳곳에 벽돌의 이가 빠지고 창문을 보수하지 못해 판자로 막아놓은 창문을 가진 건물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톰 내지는 그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자가 인사를 건넨 후 혹시 술병 있음 잠시 건네 달라고 웅얼댔다. 앨런은 답례하는 둥 마는 둥 얼른 스윙도어를 밀고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총기(聰氣)도 자신만큼 흐려진 지 오래였으나 또 모르는 일이었다.

 영웅들의 안식처 1층은 식당 겸 응접실 겸 중환자의 숙소였다. 1층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다인실이 아니고 1인실을 가진 퇴역군인일수록 상대적으로 경증을 가진 자였다. 앨런은 31인실이었다. 로비 카운터 뒤에서 사십대 후반 간병인 마사가 지친 미소를 보이며 앨런을 맞이했다.

 그녀가 카운터 옆, 공지와 순번이 빼곡히 적힌 거대한 칠판을 가리켰다.



 “오늘 목욕 시중이라는 거 알죠?”

 “, 부인.”



 앨런은 자신에게 목욕을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사이 마사의 눈은 더러운 조각들이 붙은 흰 수염에 꽂혔다.



 “앨런 씨도 그때 좀 씻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부인.”

 “아침에 누가 앨런 씨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니더군요.”

 “누가요?”

 “보훈청 사람이랬어요. 여기선 나름 잘하고 계신다고 말해 뒀어요.”

 “감사합니다, 부인.”



 앨런은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한 뒤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로 향했다. 2교대인 간병인들은 월급도 적고, 공무원도 아니었지만 연말에 저들의 사후평가가 표로 작성되어 쉼터에 머문 군인들의 퇴소 여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권력을 지녔다. 이번처럼 보훈청의 긴급 점검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심각한 술주정과 폭행으로 가족에게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앨런은 항상 잘 보이기 위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나무 휠체어를 위해 계단이 아니고, 곳곳에 껄끄러운 천을 붙인 경사로였다. 2층의 모든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사지나 정신, 또는 둘 다 불편한 퇴역군인들을 돌보는 다른 당번 퇴역군인들도 상대적으로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복도엔 환기를 하지 않아 떠도는 담배연기와 악취,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의 욕설로 가득했다. 오늘 마사와 같은 근무조인 오십대 후반 간병인 오드리가 앨런을 째려보았다. 마치 이 모든 혼란이 그가 저지른 일이라는 듯 눈빛은 날카롭고 표정은 퉁명스러웠다. 앨런은 마사에게 하듯 얼른 모자를 벗었다.



 “좋은 밤입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앨런은 얼굴을 좀 더 찡그렸다. 3층은 상대적으로 나았다. 우선 경사로가 아니라 계단이었다. 이곳의 퇴역군인들은 욕설이나 비명을 대놓고 터뜨리지 않았고, 그렇게 하더라도 꼭 문을 닫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앨런은 목걸이에 걸린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원래 하나의 방을 네 개로 쪼갠 그의 작고 초라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창문, 1인용 침대, 벽에 붙박인 옷걸이 겸 선반, 침대 옆 탁자 외엔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앨런은 탁자 위 싸구려 위스키에 급히 다가가, 병 옆에 있던 유리컵에 위스키를 가득 채운 뒤 단숨에 들이켰다. 기분이 크게 나아졌다. 좀 전까지는 껄끄럽던 목욕 봉사도, 미친놈이 줬던 심란한 돈 주머니도 모두 별로 심각하지 않은 일로 탈바꿈했다. 앨런은 내친 김에 한 잔 더 들이키고 정복과 모자를 벗어 못에 걸고 아래로 내려갔다.

 공동 목욕탕은 식당 옆 부엌과 붙어 있었다. 따뜻한 물을 데울 수 있는 동시에 멀리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나름의 논리로 배치된 모양이었다. 앨런은 기분 나쁜 끈끈함을 지닌 나무문을 재빨리 열었다. 목욕탕은 다섯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만큼 작은 방이었다. 서툰 솜씨로 붙인 푸른 타일이 덜렁대는 벽과 바닥 한가운데에는 왕을 섬기는 시종처럼 뜨거운 물이 담긴 금속 양동이들을 주위에 거느린 채, 때 묻은 사기 욕조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뜨거운 김이 안개처럼 목욕탕을 메우고, 양동이가 가벼워 보이고, 오른쪽 사기 욕조에 벌거숭이 남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봐서 마사가 이미 혼자서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뒤돌았다.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부인.”

 “마무리해 주세요.”



 마사는 나가고, 자그마한 소음도 크게 울리는 목욕탕에 앨런과 브랜든 단둘만 남았다. 브랜든은 지근거리에서 터진 포탄 파편에 당해 아래턱과 왼손, 왼발을 잃은 프리포트 출신의 상이군인이었다.

 지적을 잊지 않고 자신의 수염부터 가꾼 앨런은 다음으로 비누가 묻은 해면을 들어 상처투성이 몸을 훑기 시작했다. 해면은 목과 가슴을 거쳐 오른팔을 끝내고 그루터기만 있는 왼쪽 팔뚝으로 향했다. 앨런은 한시바삐 목욕 봉사를 끝내고 여기를 얼른 빠져나갔음 싶었다. 축축한 공기나 끔찍한 흉터 때문이 아니었다. 톡 튀어나온 올챙이배 다음이 쪼그라든 성기여서도 아니었다. 최악은 그가 소처럼 축 늘어진 긴 혀를 낼름거리며 자꾸만 사과를 연발한다는 사실이었다. 다물거나 여는 등 적절히 조절해서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아래턱이 완전히 사라진 터라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람 손에 자란 짐승처럼 끙끙대면서 어렴풋이 알아차릴 만한, 목구멍에서 난 소리로 자신이 귀찮게 굴고 있다며 용서를 구했다.

 앨런은 다른 사람처럼, 그러니까 가스로 눈을 잃은 사무엘처럼 그가 차라리 욕설이나 저주를 퍼부어줬음 싶었다. 자신도 이미 밑바닥인데 남을 동정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앨런은 브랜든을 안심시키는 척하면서 자신에게 자꾸만 최면을 걸었다.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단 생각에 마음과 달리 좀 더 오래, 좀 더 정성을 담아 그의 몸을 닦았다. 수건 겸용 목욕 가운을 입힌 뒤 브랜든의 머리에 턱을 대신하는 붕대를 감아주는 일이 목욕 봉사의 마무리였다. 정수리를 기점으로 양 귀를 지나는 붕대를 두른 브랜든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혀가 머물거나 부딪칠 데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발음도 또렷해졌다. 잦은 사과가 잦은 감사로 바뀌었다.



 ‘그러지 마, 제발.’



 앨런은 마사에게 브랜든을 맡긴 뒤 얼른 자신의 방으로 올라왔다. 얇은 문, 먼지 외엔 뭐 하나 풍족한 게 없는 황량한 방 풍경, 마분지처럼 얇은 모포를 올린 딱딱하고 좁은 침대 등이 기다렸다가 그를 반겼다. 아까는 술이 없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앨런은 급히 술잔에 술을 따르며 이곳 말고 다른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골이 좋겠어. 시골로 가고 싶어.’



 탁한 매연과 회색 벽돌 건물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그리웠다. 어렸을 적 갔던 외할아버지의 대농장 같은 그런 곳이면 더욱 좋았다. 거기에는 공작새부터 시작해서 온갖 동물이 살고 있어서 농장이 아니라 동물원을 연상케 만들었다.

 앨런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오십대처럼 보이는 지친 얼굴에 아이 같은 생기가 머물렀다.

 몰락한 외가는 이젠 가볼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추억은 꿈이 되고 유년기를 넘어서서도 항상 그리는 그리움이었다. 참호를 지키던 전시에도 틈만 나면 떠들어서 부대원들 전부를 질리게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누군가 그럴 거면 아예 하나 만들라고 짜증을 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말이 마음에 들었지.’



 물론 자신이 꿈꾸는 장소에는 도살장이나 고기를 쌓는 헛간은 필요없었다. 그들은 고기나 사역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순전 사람들과의 교감, 접촉, 소통 때문에 거기 있을 것이었다. 농장이 아닌 만큼 이름도 특이하면서 거창했다.

방주(方舟, Ark).

 꿈꾸는 듯한 표정이던 앨런이 서서히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봐야 뭐하나? 아무리 좋은 데로 가도 자기 자신은 항상 따라오게 된다.



 ‘왜 난 자신을 이렇게 싫어하지?’



 물으나마나 앨런은 답을 알고 있었다. 앨런은 더러운 술잔 속 기름처럼 번들거리는 싸구려 술을 내려다보았다. 술은 현재를 규정하였다. 이 중독적인 액체가 제공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다. 한편 그 옆에는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금화 자루가 들어 있었다.



 “.”



 이제야 보훈청에서 온 사람이 누군지, 그 미친놈이 왜 자신에게 거금을 희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아.”



 앨런은 흐르는 눈물을 더러운 소매로 훔치며 침대 밑에서 요강으로 쓰는 금속 양동이를 꺼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병, 다른 한 손으로는 양동이를 덮었던 뚜껑을 들고 그 안에다 모든 술을 쏟아 버렸다.

 아메리나의 유명 문인 마크 트웨인이 그랬다. “금연만큼 쉬운 것은 없다. 나는 벌써 다섯 번째 금연을 했다.”.

 금주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중독성에서는 앞서고, 만취하면 추한 짓을 저지른다는 점 때문에 금주에는 용기마저 필요했다. 술을 잔뜩 마시면 부끄러운 기억, 고통, 슬픔을 손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피난처를 버릴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리고 그는 2차로 습격한 루시의 괴물들에게 부대원이 전멸한 뒤 시체 속에서 아군이 진지를 다시 빼앗을 때까지 숨어 있는 동안 용기란 용기는 전부 소진해 버렸다. 그는 지금 사람 형상을 한 빈 껍질이었다.



 ‘……하지만.’



 앨런은 복수를 하고 싶었다. 당연히 좀 있으면 마시고 싶겠지만 그때마다 사더라도 계속해서 버리며 그 건방진 놈에게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실패해서 돈을 전부 써버린다면 그마저도 복수의 일환이므로 앨런은 언제든지 이기는 싸움이었다.

완전히 다른 두 갈림길 앞에 선 사람답게 앨런은 웃다 울다 했다. 달빛이 그를 감쌌다가, 사위가 점차 어두워졌다가, 새벽녘 햇살이 자그마한 창 너머로 살며시 어루만졌다.























 지케이오 느낌표가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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